"태어난 고향이 어딘지, 친척들은 어디에 흩어져 살고
있는 것인지, 정말 그런 것 몰라. 내 이름이 배수진이란 것밖에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남에게 그런 것 묻지 않고 살았어.
내가 철부지 젖먹이일 적에 엄마가 남편한테 버림받고, 엄동설한에 날 들쳐업고 사시사철 지향 없이 떠돌며 살았지. 우리 엄마 죽을
때까지 몸으로 때우고 감당해야 할 일이라면, 도둑질하고 서방질 빼놓고는 안 해본 일이 없었어. 다라이에다 생선 몇 마리 얹고 이
마을 저 마을 넘나들며 생선장수도 했었고, 파출부살이는 보통 하는 일이었고, 삯바느질도 했었고, 농가에서 더부살이로 들어가
모심기, 고추 따기도 했었지. 그래서 우리 엄마 손등은 매화나무 등피같이 갈라터져서 험악했어. 내게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다면, 이름도 없는 산골 구석 남의 집 밭둑에서 칭얼거리며 뱀딸기나 질경이 뜯어먹으며 놀았던 기억밖에 없어. 내가 봐도
어머니는 숨이 끊어질 때까지 놀고먹는 일을 무서워했지. 만류를 해도 소용이 없었어. 돌아가시기 전까지 이 좁은 포구에서 일감을
찾아 헤매다녔어. 그게 우리 엄마야. 선창으로 나가 입항한 배에서 그물을 받아 생선을 따거나 그물 보수하는 일로 생계를 꾸려
나갔지. 그런 애옥살이를 견디는 중에 당신은 배를 쫄쫄 굶으면서 먹는 것만 생겼다 하면, 오지랖에 싸들고 와서 나를 먹이는데 거의
미쳐 있다시피 했지. 나느 으레 그래야 하는 것처럼그 써늘하게 식은 음식들을 목구멍이 미어터지도록 꾸역꾸역 우겨넣었지. 왠지
알어? 나에게는 그게 낙이었고 잘 놀고 있는 것이었고, 그것 외에는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지. 나는 어머니란 존재가
오직 자식 먹여 살리기 위해 살고 있는 사람으로만 알았으니까. 끼니를 거르거나 배가 조금만 고파도 먹을 걸 안 가져온다고 어머니
따귀도 때려봤어. 그 죗값 때문에 지금 내 몸뚱이가 이 꼴이 되고 말았지.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당신이 배를 주리는
원수를 갚느라고 나를 그렇게 짐승처럼 먹여 키웠는지도 몰라. 내가 이런 비곗덩어리로 살게 되리라곤 어머니는 상상할 수도
없었겠지."
- p. 120
나는 갈팡질팡 방파제로 달려갔다. 그리고 방파제 끝에서 안성댁이 껴입었던 푸른색 재킷을 발견했다. 단정하게 접혀 있는 상태였다. 방파제 앞에 끝간데없이 펼쳐진 곳을 바다로 생각했다면, 신발을 벗어놓았을 텐데, 태양이 작열하는 뜨거운 사막으로 알았기에 껴입고 다녔던 재킷을 벗어놓고 떠난 것이었다. 이제 사막으로 떠난 수진이 언니처럼 바다 끝에 서있는 나 어진이 역시 온전히 혼자가 된 것이다.
- p. 333
- p. 120
나는 갈팡질팡 방파제로 달려갔다. 그리고 방파제 끝에서 안성댁이 껴입었던 푸른색 재킷을 발견했다. 단정하게 접혀 있는 상태였다. 방파제 앞에 끝간데없이 펼쳐진 곳을 바다로 생각했다면, 신발을 벗어놓았을 텐데, 태양이 작열하는 뜨거운 사막으로 알았기에 껴입고 다녔던 재킷을 벗어놓고 떠난 것이었다. 이제 사막으로 떠난 수진이 언니처럼 바다 끝에 서있는 나 어진이 역시 온전히 혼자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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