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23일 화요일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건축가들이 건물을 설계하면서 과연 이 건물이 누구를 위한 건물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 건축가는 의사들처럼 엄숙하게 선서를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건축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건축가는 스스로에게, 남들에게 이야기하곤 한다. 여기서 인간은 자본의 소유 여부나 사회적 지위의 고하에 의해 달리 규정되지 않는다. 건물 설계를 의뢰한 사람뿐 아니라 그 공터에서 공을 따라다니던 꼬마도 당연히 여기 포함된다. 좌판을 펴고 행상을 하던 아주머니도 포함된다. 많은 경우 건축가들의 아이디어와 노력은 자본의 배타성에 의하여 헛된 것이 되고 만다. 지니가는 행인이 잠시 앉아 있을 공간은 필요 없고 한 치라도 더 많은 면적을 임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의 언제나이기게 되어 있다. 공공 영역의 할애가 오히려 임대료를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은 아직도 임대 면적이 무작정 넓어야 한다는 절대적인 자본의 논리에 의해 압도당한다. 그래도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살펴보면 건축가의입장을 보여주는 건물을 곳곳에 찾아볼 수 있다. 


서현.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건물은 누구를 위해 만드나」. 2005, p.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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